Q1. 함께걷는미디어랩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우연히 서로 다른 시각장애인들에게 비슷한 제안을 받았습니다. 요약하면 '청각장애인들은 그들이 즐기는 콘텐츠가 없어서 불쌍하다' 정도 됩니다. 그때가 2017년이 시작되는 겨울 즈음이었는데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평소 습관대로 조금씩 조사를 해봤습니다. 실제로 청각장애인은 콘텐츠 소비방법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자막 제공 또는 수어통역 화면 추가 외에 청각장애인 중심의 콘텐츠가 없었습니다.

라디오나 팟캐스트 같은 오디오 중심의 콘텐츠를 대본으로 만들어서 농인들이 수어 드라마처럼 서로 역할극을 하고 영상으로 촬영해서 자막과 함께 넣으면 일자리도 생기고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내용을 정리해서 2019년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제안했고 선정됐습니다. 이후에 콘텐츠진흥원 제작지원 사업에도 선정됐고, 그렇게 콘텐츠 만드는 걸로 시작했죠.

Q2. 청각장애인에 비해 농아인이 문해력이 떨어진다고 했는데, 정확한 근거가 있나요? 자료 및 데이터가 있다면 덧붙여 이유를 설명해주세요.

(청각장애인, 농아인, 농인은 서로 비슷한 의미로 사용됩니다. 농인은 비교적 최근에 확산시키려고 하는 용어입니다. 그 전에는 '농아'라고 했는데, '농'은 들리지 않는다는 의미, '아'는 말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농아'라 했고 관습적으로 '농아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수화'가 한글이라는 완전한 언어의 부가적 표현방법 정도로 이해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습니다.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을 제정하면서 '청각/언어장애인이 사용하는 완전하고 독립적인 언어라는 의미로 '수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농사회에서 '농아인'이라는 말보다 '농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주길 권장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이루어진 연구로는 2014년 국립국어원 '농인의 문해 교육 실태 기초 연구'가 있습니다. 해당 연구 결과에 따르면 농인의 문해력은 청인의 57% 수준입니다. 일반적인 성인 문해력에 대해서 OECD 연구논문이나 비교문헌 등은 있지만 농인에 초점을 맞춘 추가연구 자료는 아직 없고, 국립국어원 문의결과 당분간 추가연구 계획은 없다고 합니다.

농인의 반대 개념, 즉 듣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을 '청인'이라고 합니다.

농인의 문해력이 청인에 비해 떨어지는 이유는 청인의 언어가 소리를 만드는 방법을 표시하는 사회적 규칙이기 때문입니다. 지구상 몇 몇 언어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언어가 소리(표음)문자입니다.

인간 아기는 태어나는 것과 동시에 소음에 노출됩니다. 성장하면서 소음 속에서 엄마 목소리를 구분하고 흉내내며 언어를 습득합니다. 흉내내는 소리가 특정한 사물이나 의미와 연결되고, 학교라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수 많은 오류와 교정을 반복합니다. 소리의 결합은 문학으로, 음악으로, 싸움과 화해로 의미를 확장하거나 결합하거나 제거하는 경험으로 이어지고, 성장하며 상징-은유-비유의 구조를 몸으로 익힙니다.

말은 소리와 의미의 결합 구조물이고, 문자는 소리를 표시하는 규칙입니다. 2016년 국립특수교육원, 영유아 청각장애 교육자료에 따르면 생활소음과 음성신호를 구분하는 훈련은 보통 생후 18개월에서 36개월 사이에 이루어집니다. 1차적인 문해력 차이는 이 18~36개월의 격차에 존재합니다.

청각장애 아동의 70% 는 보청기나 인공와우수술을 하면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소리를 인식합니다. 그렇게 소리를 인식하는 아동을 '통합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일반 학급에 배치합니다. 1차 문해력 격차가 존재하는 상태에서 일반 학급에 배치된 청각장애 아동은 언어의 홍수에 노출됩니다.

불행하게도 언어의 홍수는 소나기처럼 지나칠뿐 젖어들지 못합니다. 1차 문해력 격차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쌓아올릴 언어적 바탕이 빈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청각장애 아동은 교육시스템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된 상태로 방치됩니다. 보육이라는 최소한의 공적 기능 외에 직업적 경제적 주체로서 필요한 정보수용능력은 정체상태로 학년이 바뀌고 중-고등학교로 진학합니다.

제가 농인 출연자들과 콘텐츠를 만들면서 느꼈던 장벽은 단순히 언어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영어권 친구들과 영어로 대화할 때나 인도네시아-필리핀-말레이시아 친구들과 번역기를 돌려가며 대화를 나눌 때 느꼈던 문화적 차이와 다르게 내적 언어세계의 빈 공간이 있었습니다. 그 빈 공간의 정체가 무엇인지 연구했고 얻은 결론은 '소리와 언어의 관계'였고 그 결과가 '문해력 차이'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Q3. 농인이 문자를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 어떤 방식으로 접근했나요? 또한 농인의 문해력 저하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있으신가요? 인터뷰 기사를 보니 누님이 농인이라고 하는데 이점도 영향을 주었나요?

문해력의 재료는 잊혀진 기억들입니다. 읽은 것을 잊고 다시 읽으며 기억해내고 또 잊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수많은 문장 속에서 글쓴이의 의도를 상상하고 추론하며, 글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내면의 세계에 등장시켜 서로 대화하며, 나와 글쓴이 사이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죄송합니다. 흰소리였구요;;;)

문해력을 훈련하는 최고의 방법은 무조건 많이 읽어야 합니다. 그 계기가 무엇이든, 목적이 무엇이든 초기에는 무조건 많이 더 많이 읽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문해력의 곤란한 측면은 그것이 낮은 사람은 그 존재를 모른다는 겁니다. 그것이 왜 중요한지조차 인식할 수 없습니다. 문해력이 일정 수준 달성되면 그 사람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읽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무조건 많이 읽게 해야하는데, 엄마가 윽박지르며 강요해도 읽지 않는 아이들을 어떻게 읽게 하겠습니까?